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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Book

191111 [책리뷰]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철저하게 내용으로 승부하기 위해 소설을 다듬고 다듬는 작가의 이야기

< 한권의 소설도 읽어보지 않은 작가 정유정의 인터뷰집 >

나는 정유정 작가의 책을 한번도 읽어본적이 없다. 그저 작년 개봉한 영화 '7년의밤'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 몇달전 신작으로 '진이, 지니'를 출간한 작가 정도만 알고 있었지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읽어보려고 서점에서 정유정 작가의 책 앞부분을 조금 읽어봤는데 초반부터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철학적이고 생각할거리를 남기는 영화나 소설은 굉장히 좋아하지만 스릴러나 공포는 싫었다.

한정된 시간과 돈으로 즐겁고 감동적인 컨텐츠들이 많은데 굳이 나에게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는것 같아서 어두운 책들은 피했다.

그래서 이 인터뷰집을 통해 처음으로 정유정 작가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는데 완독하고 나니 그동안 이 작가의 책이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인터뷰를 책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

작가의 작품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인터뷰를 책으로 접하는것도 생소한 경험이였다.

인터뷰라는 것은 연예가중계 같은 티비 프로그램의 연예인 이야기, 작가라면 유튜브 혹은 라디오로 접한게 전부였지 책으로 인터뷰를 읽는것은 생소했다.

굳이 기억하자면 잡지 한켠에 실린 인터뷰 정도가 텍스트로 읽어 본 인터뷰의 전부였기에 인터뷰집이라는 장르는 정말 생소했다.

사실 작가 스스로 쓴 자전적인 내용의 에세이라면 모를까 인터뷰어의 책이 사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완독 후 두가지 이유에서 이 작가의 인터뷰를 책으로 접해서 다행이였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나의 호흡대로 내용을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가 온전하고 결말이 있다는 점

1) 나의 호흡대로 읽는다는 것

작품(소설)으로 작가를 만날때 의식하지 않더라도 작가의 목소리를 상상하게 된다.

예를들어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으면 시집+수녀님 이 두 단어가 머리속에서 조합돼서 이미지를 만들고 책을 읽을때 그 목소리가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준다.

헌데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굉장히 활발한 이해인 수녀님의 모습을 본 이후 다시 시집을 읽으면 전에 읽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전에 읽던 시집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진이, 지니' 출간 이후의 작가 인터뷰를 유튜브에서 찾아봤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실망했다고 해야하나, 내 상상이 만들어낸 작가와는 다른 목소리를 마주하게 되니 이상했다.

게다가 유튜브라는 매체의 특성상 빠른 여상 편집 때문에 똑같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이야기가 훨씬 무게감 없이 느껴졌다.

2) 완전한 문장의 이야기들

또한 영상으로 인터뷰를 전달하는 것과 글로 전달는것의 차이는 영상은 내용의 구성이 책보다 느슨하다는 점이였다.

영상도 물론 질문의 순서가 있겠지만 이 이야기하다가 꼬리를 물고 다른 길로 들락나락하며 진행된다면 책은 한번 더 정제되어 목차를 갖추어 안정된 흐름으로 독자에게 이야기가 전달되는것 같다.

< 정유정 -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법 >

책의 구성은 총 3부로 되어있다
1부, 정유정이 어떻게 되었는가
2부, 정유정 작가가 이야기하는 이야기(소설)
3부, 소설이 만들어지는 과정(소재-초고-수정-탈고)

1부와 2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쓰여진 것으로 개인사와 생각들이 담겨 있어 에헤이처럼 쉽게 읽혔으나

3부는 작가가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집필 과정이 적혀있는데 문학 수업에서나 읽을 법한 작가의 시점이나 화법이야기를 하고있어서 '소설쓰기 개론' 같은 수업을 듣는 느낌이였다.

금새 흥미가 떨어져서 읽는 속도가 많이 더뎠는데 그럼에도 재밌었던 부분이 2곳 있었다.

1) 등장인물. 생성과 배치

입체감이 있는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요즘 쉽게 접하고 가장 오랜시간 접하고 있는 유튜브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짧고 단순하다. 그렇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역시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복잡하지 않다.

티비 예능들 역시 캐릭터들의 행동이 충분히 예상이 가능해야 소비가능하고 혹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내용의 개연성 부족을 탓하게 되지 캐릭터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어떠할지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주연과 조연할것없이 왜 이런행동을 했을까 곱씹게 되고 궁금해지게 만든다.

이런 차이는 캐릭터를 만들때 얼마나 공이들어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것 같다.

봉테일의 디테일이 구석구석 숨겨놓은 장치들이 관객들을 작품에 더 깊게 몰입하게 만드는것처럼

정유정도 소설을 쓰기전에 등장인물들을 만들때 세세하게 캐릭터들을 다듬어서 소설을 더 개연성있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흥미로웠다.

2) '미학성보다 정확성을 우선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때 '아 이런 노력을 하는게 참된 소설가지'라며 너무 좋았다.

정유정 작가는 '너무 좋았다'와 같은 부사의 사용은 문장이 야단스러워 지기에 간결한 표현을 쓴다고 했다

형용사도 아껴쎠야 한다며 '아름다운 꽃'이라고 쓰는 대신 꽃과 주변을 묘사함으로서 독자에게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도록 문장을 쓴다고 했다.

이렇게 작품에서 작가 자신을 지우고 독자에게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한걸음 물러서는 자세가 참 좋았다.

독자에게 억지 감동을 짜내지 않는, 조미료를 넣지않고 질 좋은 재료만으로 승부하는 식당을 만난 느낌이였다.

작가의 집필과정을 따라가며 책의 마지막장까지 끝내고 나니 한 문장의 감상평이 남았다. 이 작가... 소설 맛집이겠구나 어서 책을 읽어보고 싶다.